사도행전 강해

<사도행전 강해33>거룩한 성장(사도행전 13:1~3)

남편, 아빠...그리고 목사 2026. 7. 12. 22:45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은 사도행전 전체 내용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같이 읽어볼까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 퍼져나간 주님의 복음과 복음의 증인된 교회는 사마리아에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잠시 10장부터 12장까지의 내용을 복습 삼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가이사랴'라고 하는 지역에서 '고넬료'라고 하는 백부장을 만난 일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 사역의 문이 열린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이사랴는 '사마리아'의 북서쪽 끝에 있는 도시였는데, 사마리아의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넬료를 만난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와 고넬료를 만난 일에 대해 보고하며, 이방인 사역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하며 이방인 사역의 문을 확실하게 열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 이야기에 이어 안디옥교회에 대한 내용을 이어갑니다. 지도를 보면 이스라엘 위에 신약 성경에서 아람으로 불리우는 시리아가 있고, 그 위에 튀르키예가 있었는데 바울의 고향인 다소, 사도행전 13장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안디옥, 비시디아 안디옥이 있던 도시이기도 했고, 에베소라는 도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11장에 등장하는 안디옥 교회는 바로 시리아와 튀르키예의 경계선에 위치한 교회였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행11:19~20)

  사도행전 11장에서는 스데반의 일로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사마리아에 베드로와 요한을 보낸 것처럼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를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초청하여 안디옥 교회에서 동역을 하였고, 안디옥교회는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을 정도로 특별한 정체성을 지켜가며 큰 흉년으로 힘들어하던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려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2장에서는 유대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아그립바가 교회의 핵심 지도자이자 사도 중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를 죽인 일을 시작으로,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한 내용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죽음을 막아주셨고,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주셔서 다시 교회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2장에서는 야고보의 죽음, 베드로의 구원과 함께 마지막에는 헤롯 왕의 비참한 죽음을 이야기하며 마무리됩니다.

  최선을 다해 주님을 따르며 교회를 섬겨왔던 야고보는 죽임을 당했고, 베드로는 살아났습니다. 또한 최선을 다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박해하던 헤롯 아그립바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에 주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전혀 계산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언젠가는 우리도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인데, 죽음이 우리에게 언제 찾아올지, 고통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한계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분명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12장 24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12:24) 세상은 요동치듯이 흔들리며 돌아가지만,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여지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더라도, 헤롯 왕이 만행을 저지르더라도,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나며, 헤롯 왕이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와 같은 일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점점 더 흥왕하여 더하여졌습니다. 사도행전의 성도들과 교회들은 바로 이 일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자신들에게 주어지게 될 결과와는 상관없이 흥왕하여 더하여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함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13장부터는 바울의 선교여행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폭풍적으로 흥왕하여 더하여지는 일들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의 선교여행 시작에는 11장에서 살펴본 안디옥 교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살펴 볼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또 어떻게 선교여행의 전초기지로 자리매김을 하였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모든 교회의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함께 예배하는 이 시간,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우리 교회가 배워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잘 정리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1장에서 살펴 본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며 시작된 안디옥 교회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성장해 갔습니다. 바나바와 사울로 인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던 안디옥교회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 지도자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는 먼저 안디옥교회에 어떤 지도자들이 있었는지 소개합니다. 먼저 바나바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맨 처음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보아 아마도 안디옥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는 '검은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니그로'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 시므온은 북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는데, 안디옥 교회를 함께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구레네는 현재 북아프리카 이집트와 알제리 사이에 있는 리비아입니다. 루기오 역시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방인이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여기 헤롯은 12장에 등장한 헤롯 아그립바가 아닌,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마나엔과 정확하게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젖동생이라는 표현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헤롯 왕에게 젖을 주던 유모의 자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헤롯과 마나엔은 함께 젖을 나눠 먹으며 컸지만 한 사람은 예수를 죽이는데 참여하였고, 한 사람은 예수를 믿고 전하며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사람은 '사울'입니다.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마지막에 이름만 등장하지만, 이제부터 사도행전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사울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됩니다.

  지도자들만으로도 알 수 있듯 안디옥교회는 다양한 지역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공동체입니다. 인종도 다르고, 출신도 다르고, 사회적 지위도 달랐습니다. 성장 배경도, 지식도, 심지어 종교도 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에서는 그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됨을 이루었고, 교회의 리더십이 되어 마음과 힘을 모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사랑에 대해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유명한 말씀이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우리 고린도전서 13장 4~7절까지 말씀 같이 읽어볼까요?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 무엇보다 위 내용처럼 사랑으로 하나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는 공동체, 자랑하지 아니하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는 공동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공동체,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함께 참고, 모든 것을 함께 믿으며, 모든 것을 함께 바라며, 모든 것을 함께 견디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즉, 교회는 억지로 어떤 틀에 끼워맞춰 획일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자유롭게 각 사람의 다양성이 드러나지만, 각 사람의 특성을 서로 존중하며 조화를 추구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각 개인이 가진 특성을 서로 존중하며,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되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헌신하며 하나님 나라라는 하나의 목적 때문에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아가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거룩한 사랑 안에서, 거룩한 마음과 거룩한 믿음으로 하나 된 공동체, 안디옥교회는 그 일이 멋지게 시작 된 공동체였습니다.

  경쟁사회가 만들어 놓는 것은 '차별'입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파헤치고 나의 우월성을 주장하여 너와 나의 차이를 만들어 보이든 보이지 않든 계급화시키는 것이 바로 경쟁사회로 만들어지는 결과입니다. 유대사회는 혈통과 율법으로의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통해 이루어가신 일은 모든 차별의 일들을 깨뜨리시는 것이었습니다. 화평과 평화의 복음으로 둘로 나뉘어진 것들이 하나되게 하시는 일이 바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의 중요한 본질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걸음을 따라 그 일을 우선으로 여기며 하나되는 공동체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철저한 경쟁 사회 속에서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 학력, 직위, 능력, 배경 등 어떤 모습으로든 차별 꺼리들을 만들어 남을 짓밟으려고 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려 합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교회를 통해 나타내어져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의 대단함을 증명하고, 멋지고 세련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존재 가치가 더욱 분명해지며, 사랑 안에서 하나되는 연합입니다. 다른 배경, 다른 생각,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 될 수 있음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어서 2절 말씀은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13:2) 독특한 표현이 나오는데, 본문에서는 주를 섬겨 금식하였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언제 금식을 하십니까? 오늘 우리에게 '금식'은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어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행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1절에 나온 5명의 지도자들은 그런 의도를 가지고 금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금식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하나의 표현이었습니다. 금식은 단순히 식사를 안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욕망을 끊고, 죄를 끊어 내며 하나님께 가난한 마음을 구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기는 절대적 신뢰의 행동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온전히 채우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것들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거할 수 있도록, 내 안에 주님께서 살아계실 수 있도록 나의 자리를 비워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리더들의 모습이 있었기에 안디옥 교회 공동체에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제 안디옥 교회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 일을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가장 중요한 리더십이었습니다. 둘 중에 하나가 빠져도 교회에는 어려움이 발생 할 수 있는데, 성령께서는 이 둘을 따로 세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안디옥 교회의 멋진 모습이 이어집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핵심 리더십인 바나바와 사울에게 교회의 운명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미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와 사울 뿐만이 아니라 훌륭한 리더가 세명이나 세워진 상태였고, 무엇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다면, 모든 것을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순종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은 금식하며 기도하였고, 성령의 말씀을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3절) 성경에서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장면입니다. 성령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일꾼으로 두 사람을 파송한 것이며, 안디옥 교회의 충만함이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도록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미 사마리아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데,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온 열방과 땅끝으로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안디옥 교회와 같은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안디옥 교회와 같이 그리스도인이라 칭함받는 무리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교회의 성장은 단순히 덩어리가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멋지고, 큰 건물을 지으며,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가꾸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성장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흥왕하며 더하여 지도록 그 길을 열어가는 것이며, 말씀과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어쩌면 그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교회는 커졌지만 사랑은 작아졌고, 화려하고 세련되어져 갔지만 그 속에는 배려와 섬김을 잃어버린 이기적인 모습들로 채워졌습니다. 교회는 확장 되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작아도 사랑은 커져가야 하며, 화려하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배려와 섬김은 더욱 더해져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은 더 많은 이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하며, 오늘보다 내일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의 성장은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며, 인생의 화려한 스펙을 쌓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어야 하며, 더 많은 이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하며,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본 안디옥 교회의 멋진 특징들이 함께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거룩한 도전으로 작용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여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거룩한 성장이 일어나며, 이곳에서 함께하는 우리로 인해 우리 교회 공동체도 거룩한 성장을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