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사도행전 강해8>우리가 교회입니다(사도행전 2:42~47)

남편, 아빠...그리고 목사 2026. 7. 3. 09:51

  사도행전 2장을 살펴보며 중요하게 다룬 내용은 '회심'이었습니다. 회심은 마음이 변화되는 일이지만 단순히 감정으로 무엇인가를 느끼는 일은 아닙니다. 우선순위가 바뀌는 일이며, 주인이 바뀌는 일, 가치체계가 재조정 되고, 세계관이 변화되는 일입니다. 즉, 총체적이며 존재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맞이하게 된 첫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침례를 받은 삼천 명은 바로 이런 변화를 맞이하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회심한 자, 즉, 이런 변화를 맞이하게 된 사람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우리 38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은 자, 즉, 회심한 자들이 무엇을 얻게 된다고 합니까? 네. 성령의 선물입니다. 한때 한국교회는 성령님이라고 하면 바람과 불, 능력을 떠올리며 방언, 예언, 치유 등 초자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선물도 그런 능력이 더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런 일들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령께서 도우시는 일들 중 부수적인 일일 뿐 본질적인 일은 아닙니다.

  우리 요한복음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지 잠시 살펴보고 이어가겠습니다.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면 성령의 선물이 무엇인지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예수께서는 떠나시기 전 성령께서 오실 것을 말씀하시고, 성령께서 오셔서 행하시게 될 본질적인 일을 말씀하시는데,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것과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절을 보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예수께서도 이 땅에 화평을 주기 위해 오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평안을 끼치기 위해, 평안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통해서도 살펴보았지만 가장 완전한 기쁨, 가장 완전한 평안이 있던 곳은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즉, 참 된 평안은 하나님의 질서가 살아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사람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름으로 기쁨과 평안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를 에덴동산으로 초대하는 내용이며, 말씀이 육신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우리가 다시 에덴동산으로 갈 수 있는 길과 진리가 되셨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다시금 에덴동산, 하나님의 질서가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사도바울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언급하고 있는데,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고 합니다. 성령의 선물은 현실 세계를 뛰어넘은 것이거나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또한 개인만을 위해 나타나는 것들도 아닙니다.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세상의 질서라고 할 수 있는데, 공동체적인 것이며, 사회로 확장될 수 있는 것, 이 세상에서 당연하게, 또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할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회심’은 개인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자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가치를 깨달아 공동체적인 삶으로 변화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변화로 시작되어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로 이어져야 하는 변화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런 경험을 한 자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회개하고 침례를 받은 사람, 회심한 사람들이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들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사도행전 2장 42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이 말씀에는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특징 4가지가 언급되고 있는데, 하나,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공동체, 둘, 서로 교제하는 공동체, 셋, 떡을 떼는 공동체, 넷,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힘쓰니라”는 표현은 단순히 기도만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이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공동체적인 특징 모두를 뒷 받침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초대교회의 특징을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 시간을 통해 초대교회의 특징을 지식으로만 채우거나 감탄하며 박수 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구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그 갈망으로 인해 건강한 신앙의 모습으로 충만하게 채워진 성도의 모습으로, 건강한 교회의 모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간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첫 번째 특징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공동체’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중요하게 나타난 모습은 누군가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변화, 체험적인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권위를 존중하며, 사도들을 통해 힘써 배웠습니다. 한때 한국교회에서는 ‘목회자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칠 때가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사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하며 특별한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의 말씀들을 살펴보듯, 사도적 가르침은 사도를 통해 전해진 말씀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시작으로 신약 성경에는 아주 특별한 인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은 사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였지만, 사도행전 1장,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울 때의 두 가지 조건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들 중 하나’ ‘우리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사람’에는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제자들과 함께 다닌 사람도 아니었고, 엄밀히 말하면 제자들과 더불어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직접 사도의 권한을 받게 되었다는 주장, 그에 부합하는 가르침, 그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 증거들은 바울을 사도로서 인정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지금에야 여러 신학적인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우리 사도행전 17장 11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바울은 철저하게 사도적인 가르침을 전했지만,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은 바울의 말씀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확인한 것입니다. 상고, 즉, 비교해서 살펴본 것이죠. 이것이 바로 배우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누군가를 통해 말씀을 듣지만, 성경을 상고함으로 인해 사도적인 가르침과 일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도들을 통해 전해진 말씀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도들을 통해, 사도적 가르침을 배우는 일에 힘쓰는 공동체가 바로 참 교회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교회에 나타난 두 번째 특징은 ‘서로 교제하는 공동체’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던 사람들이 함께하는 사람들을 살펴가며 ‘사랑 안에서의 교제’를 이루어가는 공동체가 바로 참 교회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 맞는 사람,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제’라는 말은 원어로 ‘코이노니아’인데, 코이노니아는 ‘공유’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44절~45절에 코이노니아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2:44~45) 이것은 공산주의 체제에서처럼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는 이들이 더 깊은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이 자연스러운 관계가 무엇일까요? 네, ‘가족’입니다. 남이 아니라 ‘우리’가 된 것이며, 남이 아니라 ‘가족’이 된 것입니다. 약한 자들, 아픈 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필요만을 챙기며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던 삶이 아닌 서로의 필요를 위해 나눌 수 있는 물질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자발적인 섬김의 공동체가 된 것이며, 서로 교제하기에 힘썼다는 것은 단순히 함께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닌 이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 교회에 나타난 세 번째 특징은 떡을 떼며 음식을 먹는 공동체입니다. 떡을 떼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영적 일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음식을 먹는 것은 공동체의 단합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도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힘쓰는 공동체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 교회에 나타난 네 번째 특징은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한 곳에 모여 ‘주여 주여’를 외치며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하나님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맞추는 것, 즉, 내 마음의 자리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46~47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6~47) 초대교회 공동체는 날마다 기도로 마음을 같이 하였고,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하였으며, 그들이 모인 곳은 성전이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마음을 구했으며,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났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령의 공동체,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난 초대교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공동체”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지는 공동체”였습니다. ‘교회 와주세요.’ ‘예수 믿어주세요.’라고 사정하듯 전도를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전도가 되어지는 공동체,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한 공동체, 평안과 기쁨이 넘쳐서 흘러가는 공동체가 초대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는 복지와 인권을 굉장히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초대교회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초대교회에서 나타난 평안과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라도 하나 더 챙기려고 하는 이기심과 자신의 것을 하나라도 덜 내려놓으려는 인색함만 늘어날 뿐이었습니다.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누리려고 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태도가 없다면 그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펴보았듯 초대교회는 ‘힘쓰는’ 공동체였습니다. 배우는 일에, 섬기는 일에, 교제하는 일에, 기도에 힘쓰는 공동체가 바로 초대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렇게 힘쓰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안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사랑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힘쓰는 공동체가 되었고, 서로를 사랑함으로 힘쓰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저는 우리 모두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거룩한 사랑이 회복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년 6개월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함께하지만, 사랑으로 말미암아 함께 힘쓰는 공동체가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초대교회에서 나타난 일들이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하고,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