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사도행전 강해4>오순절, 바람과 불(사도행전 2:1~4)

남편, 아빠...그리고 목사 2026. 7. 2. 21:54

근현대사 교회 인물 중 '찰스 피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일어난 2차 대각성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사람으로, 2차 대각성운동 기간 동안 가장 활발하게 부흥운동을 한 사람입니다. 요즘에는 전에 비해서 많이 없지만, 20세기 말 한국교회에서도 '부흥회'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부흥회는 부흥회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부흥회하면 떠오르는 그 분위기는 대부분 찰스 피니의 영향으로 이어진 것들입니다. 목회자가 예배 중에 이름을 불러주면 회심과 축복에 더 큰 효과가 있다고 믿었고, 설교단 앞에 고뇌의 좌석을 두어 그곳으로 나와서 기도하면 더 큰 은혜와 믿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목회자가 예배 중에 이름을 불러주는 일, 안수 기도를 해주는 일, 기도할 때 앞 자리는 물론 강대상까지 올라와서 하는 경우도 유행처럼 퍼져 나갔었죠.

  그런데 찰스피니의 신학에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찰스 피니는 부흥이 하나님의 선물이긴 하지만, 인간의 노력에 의해 일정 조건이 갖추어지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성령을 배제한 인간의 행위 중심적인 사상인데, 찰스피니는 원죄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인간의 선한 본성으로 의지와 결단이 있으면 회심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찰스 피니가 기독교 역사에 미친 영향을 모두 부정하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교단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고, 오늘날에도 찬반 입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찰스 피니가 한국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부흥회 뿐만이 아닙니다. 찰스 피니의 사역에는 '결단 기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찰스 피니가 가진 신학적인 사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결단의 의지를 가지고 기도를 하면 회심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찰스 피니가 인도한 집회의 끝에는 결단 기도문을 읽게 만들어 회심에 대한 믿음을 갖게 했다고 합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과거 한국교회에 있었던 '영접기도'가 바로 찰스 피니의 결단기도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있고, 회심, 영접,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또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기도가 그렇게 큰 효과가 있었다면 예수님은 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또 제자들과 바울은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회심, 영접, 구원의 일은 우리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루어주시는 일이며,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 번 물어본 질문인데,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확신은 어떤 것입니까? 과거 한국교회에서는 '영접'과 '구원'이 마치 천국행 열차표를 얻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란 죽게 되면 자신이 천국 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라는 믿음을 뜻하는 것이어었죠. 그런데 엄밀히 따져서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살아가는 동안 평안한 생각이 조금 더해지는 것 그 이상의 효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우리가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전혀 동행하지 않는데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확신만 있다면 과연 영접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내가 회심, 영접,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회심, 영접, 구원에 대한 일은 오직 하나님만 허락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믿음과 우리의 삶에 그 일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즉,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이 아니라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과 구원을 이루시는 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제 이 내용들을 전제로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2장 앞부분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살펴볼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 노력, 결단이 아닌 철저하게 성령께서 이루어가시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 볼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함께 예배하는 우리모두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실현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1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행2:1)오늘 본문의 시간적 배경은 오순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모세를 통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내려졌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사람과 동물의 첫 번째 난 것, 즉, 장자의 죽음이었는데, 명령을 따라 문설주와 기둥에 양의 피를 발라 놓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죽음의 재앙이 그 표시를 보고 넘어갔다고 해서 그날을 기념하여 ‘유월절’이라는 절기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순절은 바로 이 유월절로부터 오십일 되는 날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시작으로 보리 추수를 하는데, 오순절은 유월절에 시작한 보리추수를 끝내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모든 절기가 다 그렇지만, 맥추절 역시 유대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절기입니다. 애굽에 있는 동안에는 농사를 지어도 모든 것이 애굽의 소유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와 농사를 지어 처음 추수한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저는 취업이 보장된 일반 대학교를 다니다가 1년을 남기고 신학대학교로 편입을 했습니다. 허락을 받고 한게 아니라 자퇴서를 내고 난 후에 집에 가서 통보식으로 알렸는데, 아버지는 배신감이 드셨나보더라구요.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신학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아버지로서 등록금은 내주겠지만 생활비는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편입 전에 일을 좀 했어서 모아둔 돈이 아주 조금 있었는데, 많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그 돈으로 한 학기는 어떻게 생활을 했지만, 두 번째 학기는 밥도 빌어서 먹고 진짜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당시 어노인팅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었는데, 차비가 없어서 며칠씩 밥을 굶어 차비를 만들어 올라가기도 했었습니다. 4학년이 되어서 파트 사역자로 전도사로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제가 다니던 학교가 대전이었고, 사역지가 경기도였거든요. 첫 사례비를 받았는데, 30만원에 교통비 10만원 해서 40만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사례비를 통장에 입금해주시지 않고, 봉투에 담아서 주셨는데, 첫 사례비를 받고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인간적인 마음으로 ‘이제 안 굶어도 되겠구나, 한 번씩 햄버거, 짜장면도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마음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의 첫 전투, 여리고 성 전투에서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을 기억하며 첫 사례비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습니다. 믿음이 조금 부족해서 전부를 드리지는 못하고, 교통비 10만원을 뺀 나머지 30만원을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든 상황에 정장이 없어서 동기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진짜 허름한 정장 한 벌을 겨우 장만하게 되었고, 그 정장을 입고 사역을 시작했거든요. 하지만 제 인생이 허름하지는 않았습니다. 자격 없는 저에게 사역의 자리를 내어주신 교회를 만나게 되었고, 또 사례비까지 받으며 사역을 이어가게 된 것은 정말로 새로운 인생의 시작처럼 느껴졌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빈손으로 나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의 소산을 얻게 되었고, 이 생명의 소산은 그들이 살아갈 새로운 미래에 대한 사인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에게 바로 그런 의미였을 것입니다. 즉, 오순절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절기인데, 지금 제자들은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절기 오순절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시작,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2절과 3절에서는 오순절에 성령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셨는지를 묘사합니다. 2절에서는 청각적으로 묘사를 하고 3절에서는 시각적으로 묘사를 하는데, 성령 강림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건임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과 3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행 2:2~3) 2절에는 먼저 ‘바람’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바람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루아흐’, 헬라어로는 ‘프뉴마’로 사용하는데, 공교롭게도 ‘성령’이라는 단어와 동일합니다. ‘바람소리가 가득하다’는 말은 ‘성령이 충만하다’와 동일하게 표기할 수 있는 말인데, ‘성령의 충만함’은 사도행전 1장을 살펴보며 나눈 것처럼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함으로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모습이 회복된 것을 뜻합니다. 이 회복은 완전한 성화보다는 온전한 방향성으로의 전환으로 이해하면 더 좋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3절에서는 ‘불’이 등장합니다. 역시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임재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어떠함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런데 3절의 하반절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행2:3下) 구약 시대에는 특별한 한 사람,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한 사람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닌 교회로 역사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모인 모든 사람들은 각각 성령을 받았으며, 그 사람들은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교회가 바로 이런 곳입니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채워가는 곳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은 결코 자신의 의지나 결단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기도함으로 오히려 자기를 부인했고, 성령의 임재를 기다렸습니다. 인간의 힘, 인간의 방법, 인간의 지혜가 지워진 그 자리에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일하심이 더해지며 교회라는 이름으로하나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서에 보면 젊은 부자 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에서 큰 성공을 이루었고,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율법, 즉, 계명도 잘 지킨 요즘 말로 엄친아가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부자 관원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 관원은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부자 관원의 생각에는 아마도 영생이라는 것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더 좋은 것 하나가 더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결단과 의지는 무엇을 가지고 얻는 것보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일에 더 강하게 작용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 제자들에게 채워진 것은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철저한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내 뜻이 있던 자리가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지고, 나의 생각과 방법이 있던 자리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졌습니다. 이 땅에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모습으로 회복시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그 시대 속에서 교회는 바로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서 무릎꿇은 그들로 인해 영광스럽게 출발하며 새로운 생명의 일, 즉, 성령의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함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더 온전히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과 같이 언젠가 우리에게도 주어질 그날에 각 사랑 위에 하나씩 임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여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부대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는 성령의 일꾼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