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한때 한국교회는 성령은사 집회라고 하며 능력 받는 것에 집중할 때가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더 가지려고 하는 열정이 세상에서와 같이 동일한 모습으로 교회에도 이어졌던 것이죠. 말씀 암송하고, 방언 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뭔가라도 잘하는 것이 있으면 능력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다 좋은 결과를 낳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 능력을 기준으로 신앙을 평가하다 보니 유대 사회 속에서 나타난 우월의식과 열등감이 오늘날의 교회에서 나타났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받았다고 하는 방언의 은사를 뽐내며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었고, 자신이 가진 신앙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여 상처 주는 일도 비일비재 했습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교회 안에 깔려 있기도 했습니다. 성적, 학벌, 연봉 등으로 사람의 가치를 책정하는 세상의 문화가 걸러지지 않은 채 교회로 들어오면 어떤 모습을 낳게 되는지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듯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기다림을 한 것입니다. 이 기다림 속에서 제자들에게는 특별한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허락되었던 특별한 은혜는 초대교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이 시간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제자들에게 허락된 특별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더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그 마음이 우리 공동체에 뿌리내려 건강한 교회로, 올바른 교회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13~14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3~14)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 성령 사건이 등장하는데, 오순절은 유월절 주간의 안식일로부터 50일이 되는 날입니다. 하루 정도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쉽게 생각해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로부터 50일이 되는 날이 바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는 바로 이 50일 동안의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엄청난 일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행하신 일은 3절에 기록된 것처럼 40일간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하시는 동안 말씀하시고 보여주셨던 일들이 무엇인지를 다시 설명하신 것입니다. 쉽게 말해,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가르침과 행적들을 맞추어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그림을 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날 때까지만 해도 그들 역시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제자들은 달라졌습니다. 마음가짐, 삶의 모습 등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나타난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기도’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에게 ‘기도’는 굉장히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쓴 누가복음에서도 기도했다는 표현은 예수님 외에 침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와 여선지자 안나 밖에 없었습니다. 사가랴와 안나 둘 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 당시 시대 속에서 특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부활 후 제자들이 가지게 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해 주시는 특별한 일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120여 명의 사람들이 ‘기도에 힘썼다’라고 누가가 언급을 하는 것입니다. 즉, 진짜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는 기독교에서만 사용하는 특별한 표현은 아닙니다. 정화수를 떠놓고 ‘비나이다’라고 하며 치성을 드리는 것처럼 자신이 믿는 신에게 무엇인가 구하는 행동을 흔히 ‘기도’라고 표현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자들의 기도는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바라는 소원 성취를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속에 물들어 있던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즉, 성령으로만 채워지기만을 구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었습니다.
흩어진 퍼즐 조각이 맞춰진 사람들, 하나님 나라의 그림이 그려진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사역’이 아니라 바로 ‘기도’였습니다.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기준으로 세워졌던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을 기준으로 다시 세워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반응은 “주님, 제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던 자였습니다.”라고 하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제 저의 욕심, 헛된 마음을 모두 치워주시고, 그곳에 주님의 뜻이 채워지게 하옵소서, 저의 나라를 향한 꿈이 있던 자리에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품게 하옵소서, 나는 죽고 주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모여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이들의 기도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며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의대 준비 유치원, 유치원 의대 입시반이 있다고 하죠.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수학 문제 풀이를 시킨다고 하니까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공부하는 것과 성장 해가는 과정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를 발견하여 의사의 꿈을 꾸게 된 사람이 공부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당시 유대인들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한 번도 ‘기도’라는 표현을 그들에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 유치원 의대 입시반에 등 떠밀려 공부하는 것처럼 그들은 철저하게 세상적인 기준에서의 성공을 구하거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 때문에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올바른 기도가 아니었던 것이고, 기도가 기도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기도를 열심히 한 그들에게 나타난 모습은 교만, 외식, 위선, 판단, 정죄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기도에 힘쓰더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아내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제자들은 기도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공부하는 것과 의사가 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확실히 된 사람의 공부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지금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한 기다림, 즉, 기도에 대한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된 상태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도에 게을러지는 이유는 외부에 대한 어떤 자극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가장 확실한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부족해서, 동기부여가 확실하게 되지 않아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극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어떤 시스템이 아니라,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이 그냥 기도에 힘썼다고 하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다’라는 단어는 누가가 특별히 즐겨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한 자료에 보니까 ‘마음을 같이하다’의 원어인 “호모쑤마돈”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는 10번 정도 등장하는데, 다른 신약성경을 모두 종합해도 단 한 번만 나오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누가는 교회를 ‘마음을 같이 하는 공동체’로 생각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정말로 힘든 일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일이 힘들더라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즐거울 수 있고, 아무리 몸이 편한 곳에 있더라도 마음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세상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우리입니다. 대학 시절 단기선교를 갈 때 선교단체의 간사님이 ‘단기선교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선교의 사역이 아니라 함께 하는 팀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존재인지, 누군가를 품을 수 없는 존재인지를 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가기 전에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는데, 나가보니까 그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 되더라구요. 다른 사람과 맞추어 가지 못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1년 6개월의 시간을 통해 느끼고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사도행전 1장 다락방에 모인 이들도 한순간에 확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이 있었을 것이고, 못된 성품과 기질도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도를 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내 모습으로 살지 않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 그 모습대로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소수의 무리, 특별한 사람들만 그런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모두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 이후에 가룟 유다의 빈자리에 다른 제자를 세우는 장면에서도 기도의 일은 이어집니다. 제자들은 함께 다니던 사람,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라는 가이드 라인을 세우고 후보자를 추천한 다음,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투표가 아닌 제비뽑기를 하였습니다. ‘자격에 대해 세상 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기본적인 가이드 라인 안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정해주신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와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즉, 성령을 통해 제자들에게 나타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독선과 고집이 깨어진 자리에 이해와 용납으로 채워진 영적인 연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과거에는 이 말씀이 집회에서 방언 기도가 터져 나오듯 성령의 능력을 ‘짠’하고 입혀주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천천히 1장의 내용을 묵상해 보니 이 기다림은 제자들의 기다림이 아니라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의 기다림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함께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 것이었고,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 것이었으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진정한 동기부여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사실 설교를 준비하며 마음이 참 불편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군교회 사역을 하며 제일 소홀해지고, 게을러진 것이 기도였는데, 설교를 준비하는 내내 ‘너나 좀 잘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설교 준비가 참 어렵더라구요. 하지만 이 말씀이 저에게 뿐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가 함께 나누어야 할 말씀임에는 분명한 것 같더라구요.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은 하나님께서 기다려주시는 시간입니다. 바라옵기는 교회로 하나 된 우리 모두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모습으로 하나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다려주시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충만하게 누리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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