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사도행전 강해20>충만함과 갈급함(사도행전 8:26~39)

남편, 아빠...그리고 목사 2026. 7. 7. 10:38

  지난 시간 우리는 사마리아의 시몬이라는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며 종교와 신앙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는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계속해서 나타난 모습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과 유대교 지도자들의 모습도 그러하였고,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던 위로의 아들 바나바와 바나바가 얻게 된 존경을 얻기 위해 거짓을 행하였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함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사마리아 성에 참되고 큰 기쁨이 넘치게 했던 빌립과 마술로 사람들을 속여가며 거짓 위안, 거짓 평안, 거짓 기쁨을 누리게 했던 시몬의 모습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두 부류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이들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던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던 자들이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교회의 성도였습니다. 그리고 시몬 역시 믿게 되었고, 침례를 받은 뒤에 빌립을 따라다니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들과 이들의 차이는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그 중 확연한 차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과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부류에 속하여 있습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사도행전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함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성경에 나온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잘 살펴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단순히 살펴보며 지식으로만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이 성령 충만함을 꿈꾸고, 성령 충만함을 받은 자들,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 된 성령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빌립에게 말하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사도행전 8장 26절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8:26) 빌립은 사마리에어서 성공적으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그 성에는 큰 기쁨이 더하여 졌고, 빌립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와서 안수를 하였고, 사마리아 땅에도 성령의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사실 이렇게 성공적인 사역이 펼쳐지면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예를 들게 되는 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밖에서 일이 너무 안 풀리고 답답함이 이어지는 상황에 입대 영장이 나오면 좀 낫지 않습니까? 하지만, 밖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다가 입대 영장이 날아오면 어떻습니까? 특히 연예인들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하고 인기를 얻었는데 헐리우드를 가야 마땅한 상황에 입대를 해야된다면 엄청 심란해지지 않겠습니까? 빌립은 유대인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던 사마리아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그 성에 큰 기쁨에 더해졌으며, 이제 그 사역의 열매가 조금씩 나타날만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그 자리를 떠나라, 그리고 광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빌립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치 입대 영장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하나님 지금요?" "하나님 제가요?" "딴 사람 보내면 안 되나요?" 라고 따졌겠지만, 빌립이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26절 말씀이 끝난 후 아무런 간격이 없이 27절이 이어지는데 28절 말씀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행8:27~28) 빌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즉각적으로 나아갔습니다. 빌립은 말씀에 순종하여 약 100Km를 걸어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 곧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빌립은 그곳에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단 몇 가지 정리를 하자면, 27절에 나온 간다게는 이집트 왕을 바로, 파라오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에디오피아 여왕을 지칭하는 칭호입니다. 에디오피아는 '에티 옵스'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한 말로 '불타다'라는 뜻을 가진 '아이도'와 '얼굴'이라는 뜻을 가진 '옵스'의 합성어인데,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사는 곳을 통칭해서 '에디오피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온 에디오피아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에디오피아라는 나라가 아니라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 전체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또한 에디오피아는 솔로몬 왕국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열왕기상 10장에는 스바의 여왕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지혜롭다는 소문을 듣고,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들고 찾아갔는데 솔로몬이 그 문제에 다 대답하여 스바의 여왕이 크게 감동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에는 그 후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에디오피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믿고 있는 왕국의 기원에는 그때 그 여왕이 솔로몬과 동침해서 아들을 낳았고, 이 아들이 에디오피아 왕국의 첫 황제 메넬리크 1세였다고 합니다. 에디오피아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핏줄을 중심으로 왕위를 이어갔는데, 에디오피아 황제들은 자신들이 솔로몬의 후손이라고 여겼다고도 전해집니다.

  아무튼 빌립은 광야에서 에디오피아의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이 만난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먼저는 아무나 탈 수 없는 수레를 타고 있었고,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성경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쉽게말해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또한 이 사람은 에티오피아 여왕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여왕에게 최고의 신뢰를 받은 엄청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예루살렘에 갔다가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마치 그 시간에 그 사람이 그곳을 지나갈 것을 아신 것처럼 빌립을 그곳에 정확하게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을 지날 때 한낮에 우물을 길으러 온 여인을 만날 때와 아주 비슷한 모습입니다.

  성령께서는 빌립에게 내시가 탄 수레 가까이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여 곧장 수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수레 가까이에 가자 빌립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시는 수레 위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은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읽고 있는 그 말씀의 의미를 아십니까?” 그러자 이 내시는 빌립에게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행8:31) 이 말은 따지듯이 되묻는 표현이 아닙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아주 겸손한 모습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한 대답입니다. 이 내시가 본국에서는 엄청난 자리에 있긴 하였지만, 사실 예배에는 온전히 참석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단은 그가 이방인이었고, 또한 그가 내시였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까지 간다 하더라도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성전 앞 이방인의 뜰이라고 하는 곳까지가 전부였을 것이고, 그의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먼 길을 달려 예루살렘 성전에 가도 이방인의 뜰까지 밖에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처치와 성경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이런 상황들이 이 내시를 얼마나 힘들게 하였을까요? 본국에서 모든 것을 가진 듯 살아가고 있었지만 이 내시의 평생 소원은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알고,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아마도 이 내시는 자신에게 다가와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빌립이 엄청 반가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내시는 빌립에게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머릿속에 한 번 그려보십시오. 성령님께서 친히 주선자가 되어주셔서 만나야 할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네비게이션으로 주소를 찍고 집이나 건물로 간 것도 아니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로 나아간 사람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 평생 하나님을 간절히 찾던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순종한 사람이 성령을 향한 갈급한 마음을 만난 것입니다. 이 내시가 읽고 있었던 말씀은 이사야 53장 7~8절 말씀이었습니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행53:7~8)

  이 내시는 이 말씀에서 가리키는 사람이 이사야 본인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지를 물었습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이 구절을 이사야 선지자 자신의 고난 또는 이스라엘 전체의 고난으로 이해했었는데 아마도 이 내시는 그러한 내용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빌립은 그에게 예수를 복음으로 전하였습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8:35) 즉, 말씀이 육신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그의 고난과 죽으심이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했을 것이고, 부활하신 예수에 대해 설명을 하며, 예수께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주셨는지, 예수께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고 계시는지, 예수께서 머리가 되신 교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전하였을 것입니다.

  이 내시는 그동안 예루살렘을 오가며 예배에 힘썼고, 성경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한 나라의 여왕의 절대적 신임을 얻는 자리에 올랐다는 것으로 이 사람이 얼마나 잘 살아왔을지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내시의 영적 갈급함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고, 많은 것을 해왔지만 그것이 이 내시의 갈급함을 해소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갈급함이 더해지던 어느 날 이 내시는 광야에서 성령의 사람 빌립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사람 빌립을 통해 전해듣게 된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였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내시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가 전해지자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서부터, 예수를 통해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흩어졌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 안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그림이 그려지게 된 것입니다. 내시는 성령의 사람 빌립을 통해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되신 예수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가져왔던 어떤 것들보다, 지금껏 익혀왔던 어떤 것들보다, 지금껏 해왔던 어떤 것들보다 이 내시에게는 복음에 대한 경험이 위대했습니다.

  이 내시는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 36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행8:36) 내시는 자신의 인생을 예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길을 따라가기로 결단 하였습니다. 이 내시의 모습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39절 하반절입니다.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행8:39)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으로 인해 큰 기쁨이 더해졌던 사마리아 성과 같이 이 내시에게도 복음으로 인한 큰 기쁨이 더해졌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을 기억하십니까? 이 여인은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상처로 얼룩진 지난날의 삶을 모두 벗어던지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외쳤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본 이 내시 역시 침례를 받은 후 기쁘게 돌아갔다고 하는데, 돌아간 그곳에서 수가성의 여인과 같은 모습으로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외치며 또 하나의 증인으로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국가이며, 지금까지도 국가 정체성과 기독교가 깊이 결합되어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초대교부들은 에티오피아에 복음을 전한 첫 인물이 바로 이 내시라고 기록합니다. 성령의 사람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간 곳에서 한 사람을 만나 성령의 일을 행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갈급한 영혼에 생명의 복음이 심어지게 하였으며, 생명의 복음은 그 후 한 나라가 변화되는 위대한 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교회는 빌립과 같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을 보십시오.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고,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성령의 바람이 불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교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앞서 시몬은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기도 하였지만, 성령을 이용하여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채우려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서 함께 하고 있지만 교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채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라고 경고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는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 교회는 성령님께 순종한 사람을 통해 성령님께 갈급한 사람이 함께 하며 성령으로 하나 되어 만들어지는 공동체입니다.

  바라옵기는 저는 우리 교회가 먼저는 빌립과 같이 잘 준비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지식,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을 채워가며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공동체, 성령께 순종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함께하는 한 영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나게 되는 한 영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을 경험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잘 섬기며 하나되는 은혜의 공동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저에게도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군선교로 헌신한지 이제 만으로 4년이 되었지만, 사실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됩니다.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여전히 고민이 되고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빌립처럼 하면 된다.’ 이곳에서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순종할 수 있는 겸손한 믿음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할 수 있는 복음, 저에게 실제 된 복음이 잘 준비되어 있으면 된다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제가 잘 준비되어 있으면 이 자리를 지키면서 한 해, 한 해 더해지는 시간들 속에서 에티오피아의 내시와 같은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에게도 언제까지 이 자리가 허락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겸손한 모습으로 맡겨진 이 자리를 잘 감당하겠습니다. 함께하는 여러분들도 잠시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이곳이 저와 여러분이 만난 광야가 되어 성령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어가시는 기적의 현장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