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유학을 포기하고 동네 피아노 학원을 차린 김지수(엄정화 분)가 말썽쟁이 피아노 천재 윤경민(신의재 분)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지수는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아이를 통해 이루려 고민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철저히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합니다. 영화는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지수의 미소로 따뜻하게 마무리됩니다.
최근, 이 영화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씁쓸한 리더십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2026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홍명보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이 원래 축구를 엄청 잘하는 나라도 아니고, 축구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이기에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도 아마 비슷했을 것입니다. '투혼'이라는 말처럼, 최선을 다해 잘 싸워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물론 좋은 결과까지 이어졌다면 금상첨화였겠죠.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는 경기 결과와는 무관하게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감독의 판단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경기 내용뿐만이 아닙니다.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의 태도 역시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납득하기 힘들었던 것은 경기에서의 선수 기용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공격에 손흥민, 수비에 김민재라는 월드클래스급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팀입니다. 그런데 승리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3차전에서는 손흥민을 선발명단에서 제외시켰고, 실점 이후에는 김민재를 교체했습니다.(종아리 부상으로 교체 요청이 있었다고 하지만....) 공격이 절실한 순간에는 손흥민을 투입하지 않고, 수비가 단단해야 할 순간에는 김민재를 빼버리는 결정을 하는 일은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의아한 장면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홍 감독이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자신보다 더 주목받고 높이 평가받는 선수들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심이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그가 손흥민 선수에 대해 남겼던 발언들까지 재조명되며, 이러한 의심은 단순한 억측이 아닌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씁쓸한 이야기가 아니땐 굴뚝의 연기는 아니라 생각됩니다.(홍 감독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일은 비단 축구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와 꼭 닮은 일들은 교회에서도 적지 않게 벌어집니다. 교단을 막론하고 암암리에 불문율처럼 전해지는 말이 있습니다. "부목사가 담임목사보다 설교를 잘하면, 교인들에게 인정받으면 쫓겨난다."는 말입니다. 청출어람은 사자성어에나 존재하는 이야기일 뿐, 두각을 나타내는 부교역자를 향한 담임목사의 견제와 질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자신보다 능력 있는 부교역자를 곁에 두는 것도, 그를 더 크게 성장시키는 일은 꺼리고,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을 부각시켜 줄 수 있는 사람만을 옆에 두려고 합니다. 저도 전도사일 때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총알받이야!'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주변 사역자들을 통해서도 그런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 전체의 흐름을 거스르면 안 되겠지만, 부교역자가 더 인정을 받는 것이 교회 전체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잖아요. 자신보다 더 영향력 있는 부목사를 기꺼이 지지해주며 더 멋지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 줄 수 있는 담임목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스포츠, 직장, 교회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싹이 보이는 후배를 누르는 것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길'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무너뜨리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뛰어난 선수를 제대로 품지 못한 감독이 어떻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요? 결국 자신이 가진 한계 대로만 일을 이어가다가 쓸쓸히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세대를 키우기 두려워하는 리더, 사람을 세우는 일을 두려워하는 리더는 결국 스스로의 사역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고 좋은 열매를 맺기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리더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교회를 병들게 하고, 더 나아가 다음 세대를 무너뜨리게 되며,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좁히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됩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지키는 길, 스스로를 성장시켜가는 일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품고 세워주는 데 있습니다. 감독이든 목회자든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일이 바로 그러한 일 아닙니까? 품어주는 일이며, 세우는 일입니다. 큰 사람을 담고, 큰 사람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 역시 큰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스승 김지수가 기꺼이 제자 윤경민의 디딤돌이 되어주었듯, 자신을 낮춰 더 큰 사람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모두를 세우는 일이고, 모두를 살리는 일이며, 함께 승리하는 최고의 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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